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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충현

모르세 2020. 12. 17. 12:44

과연 우리나라의 백신 구매가 늦었는가? 늦었다고 말하는 기준 시점은 언제인가? 그 기준이 구매 대상 백신이 성공한 이후라고 한다면, 우리나라는 대단히 빨리 구매를 진행하였다.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3개 백신이 3상 중간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자마자 전부 다 구매 계약을 사실상 확정지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나라들은 백신이 성공하기 전에 미리 선구매를 했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우리나라는 심판의 신호총소리가 울리지마자 뛰었지만, 다른 나라는 신호총이 울리기 전에 미리 뛰었기 때문에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는 것. (물론 이게 반칙이란 뜻은 절대 아니다.)

즉, 우리나라가 이 보다 더 빨리 백신을 구매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아직 성공여부를 모르는 상태에서 죄다 백신을 실제 필요량의 몇 배 이상을 환불불가 조건으로 오버부킹을 거는 것 뿐이었다. 환불불가 오버부킹이니 당연히 몇조원 대의 예산이 날아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다른 나라들은 그렇게 할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것.

예를 들어 인구의 500% 의 백신을 오버부킹한 나라도 있는데, 그 나라는 한 사람이 5명분 백신 맞으려고 그런걸까? 이런 나라들은 사실상 백신의 개발 성공률이 1/5 정도라고 판단하고 1:5 의 베팅에 예산을 쏟아 부은 것이다. 물론 백신 개발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투입 예산의 80%는 날려버리는 것이 확정이다.

백신을 인구 몇배 이상으로 선구매한 나라들은 다른 말로 하자면, 시가의 몇배 이상 가격으로 웃돈을 주고 백신을 사온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미 지난일은 할 수 없는 일이고, 앞으로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나라는 지난번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서 과감하게 선구매에 나설 수 있을까? (백신의 가성비는 워낙에 거대하기 때문에, 그렇게 공격적인 선구매에 나서서 사실상의 웃돈구매를 했더라도 여전히 남는 장사다)

절대 아닐 것이다. 왜냐?

지금 백신 선구매 왜 안했냐고 난리치는 사람들은 다들 주요 백신들이 3상 성공했음이 확인되고 이게 보도가 된 이후에서야 비로서 난리쳤다. 그 이전엔 관심도 없었다.

만약 지금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막 임상 1,2 상 들어갈까 말까한 백신에 먼저 선구매를 건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당장, 이게 유착이니 비리니, 혈세 낭비니 난리가 나지 않을까?

안그럴꺼라고?

지금 아스트라제네카-옥스포드 백신의 경우엔 3상까지 완료가 되었고, 거의 인증 직전까지 왔는데, 부분적인 보완 요구가 들어온 상황. 미국 정부에서도 내년 2월쯤에는 통과할 수 있을거란 관측을 하고 있고, 보완 임상 실험은 미국 정부가 돈을 대주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내 언론에서는 "이런 백신 어떻게 믿고 사냐?" 라고 엄청나게 비난을 해댄다.

만약, 지금 현재 화이자도 모더나도, 아스트라제네카도 전부 다 아직 3상도 시작 못한 상태라고 가정해보자. 이 상황에서 정부가 수조원을 들여서 죄다 사들이는데, 그게 개발 실패해도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조건이라면 반응이 어떨까?

지금 당장 정부가 임상 1,2 상 겨우 통과했고, 성공보다 실패확률이 더 높은 백신을 사기 위해 수조의 예산을 요구해도 승인해줄 수 있는 그런 제도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실수를 다시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특별법을 제정하여 백신 구매의 경우 패스트 트랙을 적용, 일반적인 예산심사나 감사, 경제성평가를 완전히 건너 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건 곤란하다면 뭐 그냥 백신 좀 천천히 들여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