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
청취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있다. 대중에게 영향력이 매우 큰 이 방송인은 윤석열에 대해 이런 말들을 해왔다.
“개인적으로 저는 윤석열 총장을 신뢰해요. 충정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윤 총장이 익성 또는 이명박과 관계있다는 이야긴 다 가짜뉴스예요.”
“윤 총장이 강직한 검사인 건 맞습니다.”
“윤석열의 별장 성 접대 의혹 취재 결과 별장 접대는 없었습니다. 윤중천의 거짓말이에요.”
“국감에서 이명박 때가 상당히 쿨 했다는 윤석열의 발언은 정무 감각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윤석열은 권력과 돈에 빌붙는 타입이 아닙니다.”
“제가 주목한 워딩은 충정이다. 충정이라는 것에 윤 총장의 진심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보는 관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출현은 윤석열 본인이 검찰조직 바깥에서 처음으로 형, 그리고 내가 충성할만한 그런 존재의 등장이라고 이해한다. 아버지라고 하면 과장일 수 있으나 일종의 피겨가 등장한 것이다. 저 사람이 자신의 굴곡 많은 검사로서의 삶을 인정해 준 것이다. 저 사람 문재인 대통령이 잘 되도록 내가 내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마음이 윤석열의 진심이었다고 보고, 그게 윤 총장의 표현 워딩으로는 충정으로 표현됐다고 생각한다.”
라임 폭로로 난리 난 검찰의 공작수사, 편파수사, 억대 뇌물, 룸살롱 접대받은 전 현직 검사들의 문제 등에 대해 “윤석열은 몰랐을 수도 있다.”는 말을 방송에서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다.
이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는 영향력이 막강하다. 그의 말 자체가 하나의 여론을 만들어 낼 정도로 파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그동안 검찰의 조국 장관 가족에 대한 마녀사냥에 대해 언론과 검찰을 향해 적극적인 비판을 가했으나, 정작 윤석열 검찰총장 개인에 대한 비판은 애써 외면했다. 또한, 윤석열 총장의 아내와 장모에 대한 의혹에 대해서도 마치 금기어인 것처럼 방송에서 다루지 않았다.
며칠 전 대검 특활비 문제로 윤석열 총장을 언급하며, 언론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 윤석열에 대한 최초의 비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사실 방송 내용은 언론이 검찰당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내용이지, 윤석열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금까지 그의 발언과 방송 내용을 보면, 그가 했던 검찰조직과 언론에 대한 비판에서 언제나 윤석열 검찰총장은 비켜나 있었다. 그는 검찰 사태의 초기부터 현재까지 인간 윤석열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나 비판은 삼가면서 미화하거나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며 줄곧 감싸줬다. 따라서 그의 입장은 ‘검난은 검찰 권력의 문제이지, 인간 윤석열의 문제는 아니다.’라는 생각이었고, 청취자들에게도 그렇게 보이도록 하고 싶었다고 볼 수 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감찰 결과를 토대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와 직무 정지를 명했다. 최근 가장 핫 한 정치 뉴스가 바로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와 직무 정지 명령이다.
그래서 그가 진행하는 청취율 1위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윤 총장의 징계 청구와 직무 배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했다. 추미애 장관의 조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과거와는 다르게 윤석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선명하게 드러내는지? 평소 그의 방송은 듣지 않지만, 이와 같은 내용들은 궁금했다.
중요한 뉴스라서 그런지 그의 라디오 방송에서도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 징계청구 및 직무정지 명령을 3일 연속으로 다뤘다. 내심 뭔가 제대로 된 입장이나 비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빈 깡통처럼 느껴졌다.
상황적으로 볼 때 인간 윤석열에 대해 예전처럼 미화 또는 우호적 평가를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윤석열에 대해 좀 강한 어조로 직접적인 비판을 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추미애 법무부장관을 적극 옹호해주리라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 않았다.
방송에서는 법무부의 입장, 판사들의 입장, 검찰의 입장, 윤석열의 입장, 야당의 생각을 되도록 중립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은 하지 않았고, 징계 청구 사유, 판사사찰의 문제, 직무 배제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정도였다.
방송에서 입장을 가진 가치판단을 내려도 되냐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어차피 중립적인 방송을 해오지 않았던 진행자다. 편향적인 방송을 해왔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으며, 나름 선명한 입장의 가치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이번에 그의 방송에서 기대한 것은 인간 윤석열에 대해서 만큼은 부정적 가치판단보다는 긍정적인 가치판단을 해 왔었다고 하더라도 징계 청구 및 직무 배제까지 된 상황이면, 이제는 이런 스탠스를 확실하게 버려도 되지 않을까? 추미애 법무부장관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와 윤석열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의 목소릴 듣고 싶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쉽다.
누구나 실수하거나 잘못된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다. 특히 사람에 대한 평가는 잘못 판단하기 쉽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면, 자신이 내뱉은 말을 인정하고, 제 입장이 이렇게 저렇게 해서 바뀌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잘못 말한 사실에 대해 한 번도 그 말을 주워 담은 적이 없었으며, 정정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넘쳐 자신이 곧 진리라는 생각은 위험할 수 있다. 윤석열이 그렇다. 이런 사람들은 잘못 비뚤어지면 괴물이 된다. 철학이 없고 남의 말을 경청할 줄 모르고 자신만 옳고 자기반성과 성찰이 결여된 사람은 권력을 갖게 될 경우 이명박과 윤석열 같은 행태를 보이게 된다.
소위 진보적이라고 불렸던 오피니언과 셀럽들 중에도 이렇게 괴물로 흘러가는 사람들을 본다. 영향력 없는 진중권 같은 부류는 그런 예가 아니겠지만, 나름 이상하게 변질된 괴물 같아 보이기도 한다.
나는 청취율 1위의 라디오 시사 프로 진행자인 그가 그런 괴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다. 그가 괴물이 되는 것보다는 좀 더 현명해지는 것이 우리 사회를 위해 바람직하다.
제법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영향력있는 오피니언과 셀럽들이 윤석열과 윤석열 가족의 비리에 대해 속 시원히 비판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는 추미애 장관에게 적극 힘을 실어주며, 윤석열의 행태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비난해 줬으면 좋겠다. 이제는 윤석열에 대한 침묵을 깨고 선명하고 확실하게 비판을 가할 때도 됐다.
언플 잘하고 한 것도 없이 숟가락 얹기는 선수인 이상한 도지사는 왜 이 좋은 찬스에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에 대해 입도 뻥끗 안 하는지 모르겠다. 정부 정책은 한번씩 비판하면서 윤석열에 대해선 한 마디 멘션도 못했던 분들, 이제는 목소리 좀 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