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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호

모르세 2020. 11. 9. 10:32

바그너의 낭만적 오페라1

바그너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탄호이저》, 《로엔그린》의 세 작품을 묶어 ‘낭만적 오페라’라고 불렀다. 이 세 편의 낭만적 오페라들은 모두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내용은 각각 그 결을 달리해 흥미롭다. 바그너는 오페라면 오페라지 왜 낭만적이라는 단서를 붙였을까?

무한한 것, 도달할 수 없는 것, 먼 곳에의 동경 등은 바로 낭만주의가 지향하는 개념들이다. 이성보다는 감성을, 고통과 눈물의 현실보다는 꿈과 불가사의한 환상을 좇는다.

독일의 낭만주의는 영웅적 표상인 나폴레옹이 몰고 온 혁명이라는 회오리바람이었다. 그러나 그렇게도 목말라했던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세상, 그러한 정의가 구현되는 세상은 더디기만 했다. 오히려 집요한 반동의 정치로 번번이 좌절될 뿐만 아니라 과거로 회귀하기 까지 했다. 희망이 큰 만큼 좌절도 컸다. 좌절, 울분, 실망은 어쩔 수 없이 현실도피로 이어졌다.

낭만주의자들에게 현실은 불행이나 저주였다. 그래서 행복한 낭만주의자들은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세계고통’ 속에서 낭만주의자들은 구원을 목말라하고 구원을 꿈꿨다. 그러나 그 구원은 현실세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죽음은 사람들이 항용 나직이 말하는 공포나 무화無化같은 궁극의 종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죽음은 “완전한 존재에 대한 형상, 즉 ‘자연의 전체성’”으로 이해되었다. 여기에 사랑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현실의 사랑은 그 굳은 맹세에도 불구하고 배반과 변절로 영원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낭만주의자들에게 죽음은 두려움이나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일거에 해결해 주는 구원이 되는 것이다. “죽음을 통해 완전한 존재, 즉 완벽한 삶을 구현하려는 욕망은 낭만주의자들의 이념적 근간을 이루게 된다.”

바그너의 세 편의 낭만적 오페라에는 위와 같은 당대의 낭만성을 짙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낭만적 오페라’라는 부제를 붙인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länder)》

1836년 6월에 바그너는 발트해에 면해 있는 러시아의 리가(Riga)란 곳에서 음악감독으로 봉직하다가 빚쟁이들에게 쫓겨 말 그대로 야반도주를 감행한다. (1839년) 부채가 많아 여권을 압수당한 바그너와 부인 민나는 정상적인 출국이 불가능하자 불법으로 러시아 국경을 넘는다. 그 과정도 바그너의 풍운아적 삶의 궤적처럼 유별나다. 국경수비대인 코사크 순찰병들은 국경주위의 수상한 자들을 보면 가차 없이 사살했기 때문에 아주 위험천만한 사선死線 이었다. 이런 와중에 키우던 강아지까지 안고 밀수업자들의 은신처인 동굴에서 기다리다가 은밀한 야음을 틈타 국경을 넘어 프로이센으로 넘어가는 데 성공한다. 그것뿐인가? 필라우 항구까지 마차로 이동하다가 전복되는 바람에 민나는 부상을 당한다. 가까스로 이곳에서 작은 범선을 타고 런던을 향해 항해하다가 이번에는 세 차례나 폭풍우를 만난다. 그러다가 강한 폭풍에 떠밀려 노르웨이 피오르드 해안의 잔트비케라는 작은 어촌에 대피한다. 바그너는 이 험난한 도피행각에서 귀중한 창작의 영감을 계시 받는다. 선원들의 외치는 소리가 해안의 절벽에 부딪쳐 메아리치는 것을 듣고 문득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경험은 나중에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주 무대로 설정되었고 제3막의 처음 부분 <선원들의 합창>으로 작품화된다.

바그너의 삶은 이토록 드라마보다 더욱 드라마틱하다. 만약 바그너가 작품을 남기지 않았더라면 그의 삶은 선원들의 삶처럼 참으로 보잘것없는 거칠고 막된 삶이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선원들이 아무 존재감 없이 무의 세계로 증발한 것같이 바그너의 삶도 그랬을 것이다.

‘창백한 남자’ 네덜란드인 선장은 아프리카의 희망봉 부근에서 폭풍을 만났지만, 오만하게도 “최후의 심판 날이 올 때까지라도 항해할 것”라며 선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속 항해하려다가 끝내 좌초되어 침몰하고 만다. 배가 침몰할 때, 자연재해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한계, 즉 인간의 한계에 절망한 나머지 선장이 악에 받쳐 신들을 저주하자 분노한 신들은 이 오만한 선장에게 저주를 내렸다.

선장은 자신의 배와 함께 7대양을 떠돌아다녀야 했고, 7년에 한 번씩만 상륙이 가능하며, 상륙했을 때 자신을 영원히 사랑해 줄 수 있는 여인을 만나야만 끝없는 방황의 연쇄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내용이다. 친절하게도 신들은 저주의 순간에도 해법을 제시해 준 셈이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페라는 이 신화를 차용하여 7년 만에 해안에 상륙한 네덜란드인 선장의 노래로 제1막을 시작한다.

과연 네덜란드인은 이 저주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여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 구원의 여인이 바로 젠타이다. 이들 둘은 첫 만남에서 그토록 열망하던 사랑을 찾았음을 직감한다. 첫눈에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의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야말로 남녀 간의 사랑이 주는 신비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신들이 내건 조건을 충족시킬 사랑, 즉 죽어도 변치 않는 절대적 사랑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그 사랑을 증명할 방법이라고는 죽음뿐이었다. 목숨과 바꾸는 사랑보다 더한 사랑은 없지 않겠는가. 결국 젠타는 바다에 뛰어들어 죽음으로 진실하고 영원한 사랑을 증명한다. 죽음과 맞바꾼 사랑으로 네덜란드인을 구원한다는 내용이다.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는 저주와 방황과 죽음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전편을 지배하고 있다.

네덜란드인은 영원히 방황할 수밖에 없는 저주를 끝내는 방법은 죽음뿐이기 때문에 죽음을 갈망하고, 젠타는 자기의 영원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이 두 남녀 간의 현실은 고통일 수밖에 없고 이 고통을 빠져나가는 길은 죽음뿐이니, 죽음을 통해 고통을 초월하고자 했던 전형적인 낭만주의적 설정이다.

대본을 직접 쓴 바그너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젠타의 희생에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연상되지 않는가?

그러나 이 오페라에서는 신이 아닌 여인이 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죽는다. 바그너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였고, 그것은 죽음도 불사하는 진정한 사랑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포이어바흐의 절대적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그너는 파리의 ‘배고팠던 시절’에 포이어바흐의 사상을 접하고 그만 사로잡히고 만다.

‘배고팠던 시절’이라 함은 앞에서 얘기한, 리가에서 도망쳐 나와 가까스로 런던을 거쳐 파리에 정착하던 시기를 말한다. 그러나 파리라고 해서 바그너에게 좋은 피난처는 아니었다. 여기서 2년 반이라는 세월 동안 바그너는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는 데 실패했으며, 하는 일마다 풀리질 않았다. 당시 프랑스 오페라계의 권력자였던 유대인 작곡가 마이어베어에게 보낸 바그너의 처절한 간청은 애처롭다 못해 눈물겹다.

"저를 사 주십시오, 선생님. 절대로 완전히 무가치한 구매는 아닐 것입니다. 지금처럼 일거리가 없으면 저는 그저 파멸할 뿐이며 제 아내까지도 저와 함께 몰락할 것입니다"

이 일뿐만 아니라 멘델스존과도 사적인 감정이 얽혀 바그너가 유대인 혐오성향을 갖는 계기가 된다. 할 수 없이 바그너는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편곡하는 일과, 빚을 내어 겨우겨우 생계를 꾸려 간다. 이때의 궁핍이 바그너 생애의 최악이었나 보다. 민나가 바그너의 친구 아펠에게 보낸 편지에

“빚쟁이들의 감옥 속에 갇혀 오페라를 쓰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이러한 고난과 굴욕의 시기에 포이어바흐의 이론은 바그너의 중심을 흔들어 놓는다. 그의 책을 읽는 순간에 깊이 경도되어 자신도 포이어바흐주의자임을 당당하게 밝히게 된다.

어느 정도냐 하면, 그가 쓴 『미래의 예술작품(1850)』이라는 책을 포이어바흐에게 헌정한다. 그 이유는 바그너가 포이어바흐로부터 받은 영향을 확실한 근거로 남기기 위해서였다 한다.

#클래식음악에서는사람냄새가난다 #작곡가지성호 지음 190-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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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Der fliegende Holländer)》 3막 1장

<노르웨이 선원들>

(술을 마시며)

타수! 망 볼 필요없어.

우리와 술이나 한 잔 하세.

호! 헤이! 헤이! 하!

돛을 감아올리고 닻을 내려라!

(타수) 이리 오게!

바람도 바위투성이 해안도 겁낼 필요 없네.

오늘 우리는 정말로 즐겁군.

모두에게는 해변에 사랑하는 여인이 있고,

좋은 담배와 좋은 포도주가 있다네.

후사사 헤이!

저쪽에 암초와 폭풍우가 있더라도 신경 쓸 필요 없네!

후사사 헤이!

돛을 감아라. 빨리 닻을 내려라!

우리는 암초와 폭풍우를 비웃는다네.

타수, 망볼 필요없네.

여기와.

우리와 술이나 한잔 하세.

호! 헤이! 헤이! 하!

암초와 폭풍을 헤이!

우리는 견디어냈다네!

후사 헤이! 할로 헤이!

후사 헤이! 타수! 호!

자, 이리와서 우리와 술이나 한 잔 하세.

[그들은 발로 바닥을 쿵쿵두드리며 막대기로 반주해 가며 갑판 위에서 흥겹게 춤을 춘다. 소녀들은 광주리에 음식과 술을 가득 담아가져온다]

(소녀들)

오! 보세요! 그들은 춤을 추고 있어요.

저런! 어떤 여자도 필요치 않은 것 같아 보이는 군요.

[그들은 홀랜드인의 배로 간다]

(선원들)

이봐요! 아가씨들 잠깐만! 어디로 가죠?

(소녀들)

여러분은 벌써 맛있는 포도주를 들었잖아요.

저기 있는 당신의 이웃사람들도 약간의 음식과 술이 필요할 거예요. 음식과 술이 모두 당신들만의 것은 아니잖아요.

(타수)

맞아요! 음식과 술을 저들에게 가져다

주시오! 그들은 갈증으로 기절한 지경일 거요!

(선원들)

저들에게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요.

(타수)

그리고 봐! 불도 모두 꺼져 있어.

선원들도 안 보이는데!

(소녀들)

[네덜란드의 배로 가려고 한다.]

선원들이여. 이봐요! 물이 필요한가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누구라도 좀 나와 봐요!

https://youtu.be/SN-n886rtu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