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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 Hong

모르세 2020. 12. 7. 11:31

싱가포르에 살며 한국에서 30년 살면서 본 것보다 더 많은 람보르기니를 보며 살고 있다. 내 남은 인생 월급을 다 모아도 살 수 없는 차를 모는 저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 주말에 공원을 걷다 보면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의 인근 국가에서 온 가정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먹고 수다를 떨며 노는 풍경을 자주 본다. 각자의 고향에 두고 온 자녀들을 위해 그들은 한달에 40-50만원의 돈을 받으며 가정부로 살고 있다.

중동에서 파견 온 동료의 집에 놀러 갔다, 그 집 월세가 2천만원 정도 된다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이 집을 지은 인도 혹은 방글라데시 노동자는 한달에 5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아 3년을 모아도 이 집 한달 월세를 낼 수 없다. 얼마 전 아프리카 국가를 포함한 트레이닝을 진행하다, 한 참가자가 자신의 집이 멀어 매일 일찍 교육을 마쳐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 친구가 사는 나라엔 무선인터넷도 쉽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들을 여건이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내신 성적이 좋지 않던 나는 수능 점수만으로 대학을 가려고 했고, 이런저런 상황이 맞아 간 대학이 취업문제까지 해결해 준 덕분에 지금까지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다. 외국에 나온 후 한국의 경찰 급여가 나쁘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 우리 경찰을 얘기할 때 ‘박봉에도 불구하고’라는 관용구를 안 쓰게 된다. 서울에서 집을 살 수 있는 정도의 자산은 아니지만, 매달 운동, 어학, 독서를 맘껏 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있고,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에게 굳이 밥이나 술을 얻어 먹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온전히 살게 된 것이 내가 노력해서 얻은 당연한 것일까? 그렇다면 이렇게 살지 못한 사람들 역시 마땅히 그들이 당할 일을 당하는 것일까? 무선 인터넷과 컴퓨터가 마땅치 않아 매일 먼길을 오가는 그 경찰과, 이국에 와서 땡볕에서 일하며 한달에 40-50만원을 손에 쥐는 이들에게, 어린 시절 내 주위 어른들은 ‘더운 나라에 살아 게을러서 못 가난한 것이다’라고 너무 명료하게 설명해 주었다.

가족들이 모두 죽고 피부병으로 가려워 하는 욥을 향해 ‘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이런 고통을 당한다’ 라고 쉽게 말했던 그 친구들처럼.. 오히려 한국 교회는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고, 못 살고 아픈 것은 하나님의 징벌이라며, 배고프고 아픈 이들이 자신들의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는 죄책감으로 몰아 붙이고 있다.

책의 저자는 말한다. 자신의 누리는 부유함을 당연히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능력주의는 극복되어야 한다고. 오히려 나는 운이 좋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조금 늦게 일하러 온 일꾼에게도 같은 삯을 준 포도원 이야기를 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라고 했던 예수의 비유가 생각난다. 이 책이 ‘정의란 무엇인가’보다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