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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수필이 있는 마음에 쉼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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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와 일연》

꿈속에서도 뚜렷이 보이시고 술 취해도 깨어나게 하시는 이

다만 도연명뿐이시니, 그분이 나의 전생이라네.

[夢中了了醉中醒. 只淵明, 是前生.]

소동파의 시구입니다. 그는 자신의 전생이 도연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대를 넘어서 각별한 마음으로 또 다른 자기 영혼을 만났으니 그 영혼이 도연명이었습니다. 옛글을 읽으며 우리는 옛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왜인지 남 같지 않은 영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율곡 이이가 매월당 김시습을 만났을 때도,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쓴 ‘김시습전’은 천하의 명문장입니다. 불교와 인연을 맺었고 강릉과 인연이 깊었고 불세출의 천재였던 사람 김시습을, 이이는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인간으로 그려주었습니다. 율곡도 불교와 인연을 맺었고 강릉과 인연이 깊었으며 불세출의 천재였습니다. 아마 그 시대에 인간 매월당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은 율곡이었을 겁니다. 이이가 김시습의 영혼으로 쓴 글이 ‘김시습전’이었습니다. ‘김시습전’에서 율곡은 매월당이었고 매월당은 율곡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매월당이 그렇게 생생한 인물로 율곡 이후의 시대에 살아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원효를 만난 일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 원효는 일연을 통해 가장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일연은 원효를 ‘성사(聖師)’로 지칭하며 각별한 존경심을 보여줍니다. 두 사람은 모두 경산에서 태어났으니 한 고향사람이었고 또한 불교승려였기에 공감하는 점이 참 많았을 겁니다. 일연에게 원효는 남 같지 않은 사람이었을 겁니다. 일연은 송고승전이나 행장에도 전해지지 않았던 이야기, 남들은 거의 모르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일연은 어느 누구보다도 원효를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일연은 원효보다 589년 후에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전쟁의 시대, 불교의 시대, 통합의 시대를 살아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원효는 삼국 통일전쟁, 백제와 고구려 부흥군과의 전쟁, 당나라와의 전쟁을 겪었습니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원효의 생애 69년 동안 신라가 치른 전쟁이 86건이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일연이 태어나던 해 1206년은 칭기즈칸이 몽골부족을 통일한 해입니다. 그 후 6차 침략을 겪었고 그 후에 다시 삼별초의 항쟁,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을 겪었습니다. 전쟁은 참혹한 살육이고 죽음입니다. 전쟁에 승자는 없습니다. 모두가 패자입니다. 패배한 자와 더 많이 패배한 자가 있을 뿐입니다.

원효와 일연의 시대는 불교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원효는 외래종교였던 불교가 교학적으로 토착화되던 시기를 살았고, 일연은 선불교가 널리 토착화되고 내면화되던 시기를 살았습니다. 또한 원효는 국가 간의 대외적 통합이 이루어지던 시대에 살았고 일연은 몽골제국의 침략으로부터 내부적인 통합이 요구되던 시대를 살아갔습니다.

이러한 전쟁과 분열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사회통합의 근거를 불교와 신라에서 발견했고 이를 바탕으로 글쓰기 철학을 수립했습니다. 원효는 ‘이론화쟁(異論和諍) 글쓰기’를 통해서, 일연은 ‘이류중행(異類中行) 글쓰기’를 통해서 그러한 시대적 과업을 담당했습니다. 원효의 이론화쟁 글쓰기는 ‘서로 다른 다양한 학설들을 소통시켜 융합하는 글쓰기’이고, 일연의 이류중행 글쓰기는 ‘서로 다른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소통시켜 융합하는 글쓰기’였습니다. 원효는 불교학설이 본격적으로 수입되던 시기에 이들을 융합하고 소통하는 글쓰기를 적극적으로 담당했습니다. 원효는 선불교가 정착된 이후 학술이론을 넘어 서로 다른 삶들 속으로 들어가 다양하게 구전되는 삶의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수집ㆍ정리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서로 다른 것을 융합하고 적극적으로 소통시키는 글쓰기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옛글을 읽는 일은 전생의 내 영혼을 만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여러분도 만나신 적이 있으셨던가요? 다른 시대에 존재했던 또 다른 나의 영혼, 또 다른 나를. 전생의 그 어느 즈음에서...

너 안에 내가 있습니다. 내 안에 너가 있습니다.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만나러 갑니다. 나를 알아주는 너와 너를 알아주는 나를, 외로운 영혼을 서로 만나게 하는 일, 그건 아마 소중한 일일 겁니다. 저는 고전을 연구하는 사람! 오늘도 만나러 갑니다. 너 안에 나를 찾아서, 옛글 속으로.

** 공부하다가 이런저런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봅니다. 괜히 먹물 냄새를 짙게 풍긴 거 아닌지 걱정됩니다. 그러하다면 송구합니다. 감안하여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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