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함을 잃은 대한민국 사법부를 위해 오늘은 그림 하나 긴급히 보고 가실께요!
오늘의 그림은 제라르 다비드의 [캄비세스 재판] (The judgment of cambyses), 1498년작으로 현재는 벨기에 브뤼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벨기에 브뤼헤 시의회의 첫 공식 주문작으로, 원래 브뤼헤 시청 시의회 상원 집무실에 걸렸던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정의’라는 추상적 주제와 가혹한 법 집행을 구체적인 신학적 비전으로 고양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보통 유럽에서는 시청 시의회실은 법적 송사가 집행되는 법정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법정을 장식하기 위해 중세에 선호되던 주제는 시 의회 업무와 관련이 있으면서도 시민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모범적 예화를 담은 장면들이었습니다.
제라르 다비드의 [캄비세스 재판]은 그림 양쪽이 책 처럼 열리는 패널 형식이며 네 부분의 일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왼편 ‘체포’ 패널의 후경에는 부패한 판관 시삼네스가 뇌물을 받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전경은 캄비세스 왕의 명령으로 시삼네스가 체포되는 순간이 담겨있습니다. 오른편 ‘처형’ 패널의 전경에는 체포된 시삼네스의 가죽을 칼로 벗기는 처형 장면이 눈에 띄게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후경에는 브뤼헤 시청사 ‘정의의 회랑’(로지아, loggia)에 아버지 시삼네스의 피부가죽을 덮은 의자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 의자에는 시삼네스의 아들 오타네스(Otanes) 가 새 법관으로 앉아있습니다.
이 그림의 바탕이 된 문헌적 전거는 헤로도투스의 [역사]와 동방 기원의 전설과 후대의 모범이 될만한 정치적 교훈적 일화들을 모은 [제스타 로마노룸]입니다.
[제스타 로마노룸]은 16쇄를 거듭한 책으로서, 그 유명한 [플루타르크 영웅전]처럼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마크로비우스, 아울루스 겔리우스, 플리니우스, 세네카, 보에티우스, 오비디우스 등의 글에서 도덕적 판단에 교훈을 주며, 모범이 될 수 있는 예화를 고루 엮은 책입니다.
이 책의 29번째 일화로, 뇌물 수수와 부패한 재판에 대한 훈계로서, 뇌물 받은 재판장의 껍질을 벗기는 잔혹한 형벌의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정의’는 중세의 아홉개 미덕 중의 하나이었습니다.
고대 이래 ‘정의’ (Justice)의 재현에는 정의를 의인화한 유스티치아(Justitiae)가 대표적 표상으로 사용되었고, 유럽의 수많은 시청사 앞에 조각되었습니다.
‘정의’는 저울과 검을 들고 공정을 기하기 위해 보통 눈을 띠로 묶은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정의를 판단하는데 있어 눈이 먼 모습은 의외이지만, 이는 당장 눈에 보이는 표피적 현상으로 사물을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울은 균형을 잡는 척도로서 공정함을 나타내고, 검은 날카로운 판단력을 나타냅니다.
제라르 다비드의 [캄비세스 재판]은 당시 사람들이 ‘정의’에 대해 생각했던 관념인 분배적 정의 혹은 보복적 정의 중 구약성서적인 의미에서의 보복적 정의를 다루고 있습니다.
‘보복적 정의’라 함은 보통 재판의 결과인 처형과 직결됩니다: [캄비세스 재판]에서 칼로 껍질을 벗기는 장면 즉, 처형받는 시삼네스의 고통과 얼굴의 찡그림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마치 공공장소에서 해부당하는 사람을 구경하듯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바로 정의를 잃은 사람들의 분노를 너무나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의: Justice’ (‘심판’, ‘재판’이라는 뜻도 있다) 장면들이 유럽에서 시청 장식의 관례적 주제로 되풀이된 까닭은 사법 및 행정을 담당하는 관료들이 모범적 예화로 형상화된 작품을 보며 어떤 상황에서도 공정함을 잊지 않도록 고전의 교훈을 항시 되새겨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세계 문명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의롭지 못하고 부정한 판결을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마구남발하신 대한민국 사법부에 속한 그 판사님들, 제발 정신 좀 차리시라고 이 그림을 날려드립니다!!!
출처: https://m.blog.naver.com/lljy3414/70107564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