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는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좋다?]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작가 겸 역사학자였던 마키아벨리는 마치 춘추시대처럼 수많은 공화국과 공국으로 나뉘어 있던 16세기 이탈리아의 각국이 다른 나라에 침략당하지 않으면서도 안정과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서 '로마사 논고', '군주론', '정략론' 등 책으로 펼쳐냈습니다.
각 저서가 모두 하나의 세트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다 정독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가장 유명한 구절 하나만 기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군주는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좋다."
그 모델이 교황령을 이탈리아 전역으로 넓혀 반도 전체를 지배하기 위해 무력 진압을 시도했던 체사레 보르지아였습니다.
보르지아가 매우 잔인한 방법을 사용해서 점령 활동을 벌였기 때문에 많은 소국들이 저항을 포기하는 것을 관찰한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체사레의 잔인성은, 종국적으로 체사레가 의존해야 하는 동맹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해 결국 배신당하고, 체포되고, 암살당하는 원인이 됐습니다.
전성기가 불과 6년밖에 지속되지 못한 것입니다.
동양의 사례는 순차 정복 활동으로 전국시대의 마침표를 찍고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설립한 진시황입니다.
기원전 221년에 태평양 연안 지역과 그 인접 내륙을 정복해서 통일국가를 이루었지만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피정복국 국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고강도의 노역을 부담하게 했고, 노역회피자는 사형에 처했으며, 탈주자도 가혹한 처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탈주자가 있는 지역의 책임자도 잔인하게 처리했습니다.
학자들이 잔인함을 비판하자 책과 선비들을 불태우고 산 채로 묻어버리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함으로써 사람들의 증오를 샀습니다.
결국 지방 순시 중 원인을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사망했는데, 후궁으로 입궁한 피정복국 포로에 의한 독살설과 수은중독설이 대등하게 유력합니다.
결국 통일 왕조 자체도 설립 12년만에 한고조 유방이 일으킨 봉기로 무너졌습니다.
이 지점에서 '군주론'의 다른 명언이 작용합니다.
"군주는 경멸과 증오를 받아서는 안 된다."
잔인함과 지독한 불공평으로 인해 경멸과 증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신속하고, 잔인하게 멸망한다는 교훈을 모르는 분들이 갑자기 많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한편, 군주론, 로마사논고, 정략론과 같은 정치철학서에서 일응 모순되어 보이는 분석들이 서로 공존하는 이유가, 역사란 결국 가치관의 대립이 영원히 지속되는 다이내믹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시민들은, 직선으로 선출한 대통령의 정책이 줄줄이 위헌선언되고, 급기야는 사소한 언행을 트집잡혀 국회에서 탄핵까지 의결됐을 때 증오심을 누르지 않고 역풍을 이뤄 낸 경험이 있습니다.
조금 더 뒤로 가 보면,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발언에 분노한 학생과 회사원들이 모두 도로로 뛰쳐나온 87년 민주화항쟁의 경험도 순수하게 독재를 증오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이루어 낸 업적이었습니다.
그 때는 대통령 직선제와 지방자치제도를 헌법에 명시하는 쾌거까지 이루어 낸 의미있는 결실도 함께 얻었습니다.
참가하지도 않은 실험으로 논문 1저자를 취득하고, 자기가 한 실험이 아닌데도 미국 주립 경시대회에 내보내 우승을 차지한 뒤 명문대에 입학한 사건은 무혐의고, 기소 청탁은 불입건인데,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대학교 표창장 하나가 대학 입시를 좌우한다는 등의 결론으로 징역 4년에 벌금 5억원이 발령되고, 그와 같은 불공평 천지를 계속 만끽해도 된다는 허가장까지 발부되는 상황에서 87년도, 2004년도와 같은 집단 증오심이 많이 확인됩니다.
기자에게 중요한 건 암기된 지식이 아니다. 보도준칙이나 언론윤리를 달달 외운다고 저절로 좋은 기자가 되는 건 아니다. 언론윤리를 암기하고 있는 기자들을 별로 보지도 못했지만, 기자에게 진짜 중요한 건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판단력과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지 않은 공감능력, 그리고 정의감이 아닐까 한다. 30년을 기자로 밥 먹고 살면서 경험으로 뼈저리게 느끼고 배운 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판검사들은 어떨까. 지금은 없어졌지만 사법시험에서든, 로스쿨 입학시험에서든 변호사 시험에서든, 인문학적 소양과 공감능력과 판단력과 정의감을 측정하는 시험이 있다면, 그 문을 통과하지 못했을 현직의 판검사들도 꽤 되지 않을까. 전교 1등이라 하여 자동으로 좋은 법조인이 되는 건 아니다.
5년차 기자가 되기 전에는 펜을 주지 말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판검사들도 변호사로 5년 이상 세상을 겪고 느끼며 실전으로 배운 이들 중에서 임용하는 게 옳지 않을까. 김수환 추기경은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고 고백했었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법과 제도를 바꿔라.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면 좋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일하게 된다. 그게 진정한 개혁이다. 국회 180석은 그렇게 하라고 준 거다.
<위기의 민주주의>
브라질의 제35대 대통령 룰라. 그는 가난으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닌 게 학력의 전부인 노동운동가였으나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재임 기간 중에 악명 높았던 브라질의 빈부 격차를 줄였고 교육과 복지를 바꾸는 정책으로 브라질을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끌어올기기도 하였다.
개혁은 기득권과의 갈등이고 싸움이다. 부자에게 돈을 쓰는 건 투자라고 하면서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쓰는 건 왜 비용이라고 하는가. 그가 남긴 명언이다. 그의 지지율은 퇴임을 앞둔 때에도 80%가 넘는 고공행진을 했었다.
퇴임 후에도 그는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그랬는데, 그가 부패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걸 국내 언론의 보도로 알게 되었다. 재임 중에 건설회사로부터 아파트를 뇌물로 받았다는 보도였다. 실망이 컸다. 몹시 컸다. 가면을 쓴 이중인격자처럼 느껴져 욕도 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룰라에 대한 수사는 룰라 이후로도 계속 이어진 진보 정권의 개혁에 대한 수구 카르텔의 정치 쿠데타의 한 부분이었고, 룰라에 대한 기소는 수구 카르텔의 협력자인 브라질 검찰의 정치적인 기소였다. 증거는 없었다.
아파트를 뇌물로 받았다는 증거를 내놓으라는 룰라의 요구에 기소 검사는 이렇게 답한다. 증거는 없다. 당신이 증거를 없앴으니 증거가 없는 거다. 그러니 증거가 없다는 게 바로 증거다.
증거를 없앴기 때문에 증거가 없는 것이 범죄의 증거라는 해괴한 논리, 물론 증거를 인멸했다는 증거도 없었다. 법정에 나온 룰라는 이렇게 말한다. 헌법과 법률을 존중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나를 이 자리에 서게 한 범죄가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판사는 룰라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기소를 한 검사와 판결을 내린 판사는 한 몸이었다.
룰라 퇴임 이후에 벌어진 브라질의 정치 퇴행을 서술한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탄핵에서 룰라까지>를 보고 알게 된 내용이다. 그 다큐를 보면서 몹시 미안했었다. 검찰과 마찬가지로 수구 카르텔의 협조자인 브라질 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옮긴, 룰라에게 비우호적인 국내 언론의 보도에 부화뇌동하여 룰라를 비난하고 욕했던 것이 몹시 미안했고, 정치 후진국이라고 브라질을 조롱했던 것이 또한 했다. 브라질이나 한국이나, 글쎄 얼마나 다를까. <위기의 민주주의> 꼭 보시라, 강추!
덧. 수구 동맹의 정치 쿠데타로 브라질에서 진보정권은 무너지고, 독재시절의 고문 등 민주주의 탄압을 두둔하는 퇴역 군인이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는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면 악어로 변할까봐 맞기 싫다는, 갖가지 기행과 막말로 브라질을 모범국가가 아닌 ’망신국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룰라를 수사하고 기소한 검사는 법무장관에 발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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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함을 잃은 대한민국 사법부를 위해 오늘은 그림 하나 긴급히 보고 가실께요!
오늘의 그림은 제라르 다비드의 [캄비세스 재판] (The judgment of cambyses), 1498년작으로 현재는 벨기에 브뤼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벨기에 브뤼헤 시의회의 첫 공식 주문작으로, 원래 브뤼헤 시청 시의회 상원 집무실에 걸렸던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정의’라는 추상적 주제와 가혹한 법 집행을 구체적인 신학적 비전으로 고양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보통 유럽에서는 시청 시의회실은 법적 송사가 집행되는 법정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법정을 장식하기 위해 중세에 선호되던 주제는 시 의회 업무와 관련이 있으면서도 시민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모범적 예화를 담은 장면들이었습니다.
제라르 다비드의 [캄비세스 재판]은 그림 양쪽이 책 처럼 열리는 패널 형식이며 네 부분의 일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왼편 ‘체포’ 패널의 후경에는 부패한 판관 시삼네스가 뇌물을 받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전경은 캄비세스 왕의 명령으로 시삼네스가 체포되는 순간이 담겨있습니다. 오른편 ‘처형’ 패널의 전경에는 체포된 시삼네스의 가죽을 칼로 벗기는 처형 장면이 눈에 띄게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후경에는 브뤼헤 시청사 ‘정의의 회랑’(로지아, loggia)에 아버지 시삼네스의 피부가죽을 덮은 의자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 의자에는 시삼네스의 아들 오타네스(Otanes) 가 새 법관으로 앉아있습니다.
이 그림의 바탕이 된 문헌적 전거는 헤로도투스의 [역사]와 동방 기원의 전설과 후대의 모범이 될만한 정치적 교훈적 일화들을 모은 [제스타 로마노룸]입니다.
[제스타 로마노룸]은 16쇄를 거듭한 책으로서, 그 유명한 [플루타르크 영웅전]처럼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마크로비우스, 아울루스 겔리우스, 플리니우스, 세네카, 보에티우스, 오비디우스 등의 글에서 도덕적 판단에 교훈을 주며, 모범이 될 수 있는 예화를 고루 엮은 책입니다.
이 책의 29번째 일화로, 뇌물 수수와 부패한 재판에 대한 훈계로서, 뇌물 받은 재판장의 껍질을 벗기는 잔혹한 형벌의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정의’는 중세의 아홉개 미덕 중의 하나이었습니다.
고대 이래 ‘정의’ (Justice)의 재현에는 정의를 의인화한 유스티치아(Justitiae)가 대표적 표상으로 사용되었고, 유럽의 수많은 시청사 앞에 조각되었습니다.
‘정의’는 저울과 검을 들고 공정을 기하기 위해 보통 눈을 띠로 묶은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정의를 판단하는데 있어 눈이 먼 모습은 의외이지만, 이는 당장 눈에 보이는 표피적 현상으로 사물을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울은 균형을 잡는 척도로서 공정함을 나타내고, 검은 날카로운 판단력을 나타냅니다.
제라르 다비드의 [캄비세스 재판]은 당시 사람들이 ‘정의’에 대해 생각했던 관념인 분배적 정의 혹은 보복적 정의 중 구약성서적인 의미에서의 보복적 정의를 다루고 있습니다.
‘보복적 정의’라 함은 보통 재판의 결과인 처형과 직결됩니다: [캄비세스 재판]에서 칼로 껍질을 벗기는 장면 즉, 처형받는 시삼네스의 고통과 얼굴의 찡그림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마치 공공장소에서 해부당하는 사람을 구경하듯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바로 정의를 잃은 사람들의 분노를 너무나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의: Justice’ (‘심판’, ‘재판’이라는 뜻도 있다) 장면들이 유럽에서 시청 장식의 관례적 주제로 되풀이된 까닭은 사법 및 행정을 담당하는 관료들이 모범적 예화로 형상화된 작품을 보며 어떤 상황에서도 공정함을 잊지 않도록 고전의 교훈을 항시 되새겨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세계 문명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의롭지 못하고 부정한 판결을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마구남발하신 대한민국 사법부에 속한 그 판사님들, 제발 정신 좀 차리시라고 이 그림을 날려드립니다!!!
출처: https://m.blog.naver.com/lljy3414/70107564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