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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0.20
    hyewon jin
  2. 2020.10.20
    우희종교수
  3. 2020.10.20
    김민웅교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용당하다 버려지는 자의 회한]

니체는 'Antichrist'라는 다소 섬뜩한 제목의 얇은 서적을 통해 불교와 일신교 계열의 종교를 비교한 일이 있습니다.

니체에 따르면,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마치 삶을 수십 번 살아 본 사람이 그 허무함을 극복하기 위해 터득한 나름의 방식을 집대성한 철학이라는 입장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불교의 가장 오래된 경전인 '숫타니파타'의 구절들은 불교가 왜 종교로서보다는 생의 철학으로 이해되는지 잘 나타내 줍니다.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극도의 이기주의가 주된 가치관인 사람들은 일응 연맹을 결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동맹의 일원이라도 기반이 더 약한 상대방을 이용하다가 버리는 관계가 되는데, 해방 이후 국내 헌정사에서도 무수히 되풀이되어 온 관행입니다.

작년 여름부터 얼마 전까지 국내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이익집단은 일부 테라토마들과 연맹 관계를 형성하여 지금까지 해 왔던 물량공세를 다시 시도했다가 민심을 형성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고, 그 결과 이번 주부터 갑자기 덤프트럭이 쓰레기를 버리듯, 동맹 관계자들을 버리는 양상이 확인됩니다.

자기들이 보더라도 도저히 목불인견이었던 것 아닌가 추측됩니다.

동양의 가장 온화하고 비옥한 곳에서 유래된 불교 철학자들이 2,500년 전부터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독립성의 중요성을 운문 형식으로 강조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윤회사상을 신봉하는 고대 철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몇 번 살아보니 이용당한 후에 버려지는 것이 그만큼 쓰라렸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현직에서 접대받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 온 테라토마들이 버려진 끝에 그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보는 심정은 경악과 분노를 넘어 선 슬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껏 저렇게 살기 위해 무수한 국민들을 고문하고, 죄를 창작하고, 표창장을 워드로 만들었다고 했다가 한글로 만들고, 휴가허가증을 문서로 내놓으라고 땡깡을 부렸는지...

허무함이 물밀 듯 밀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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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ewon jin  (0) 2020.10.20
이연주변호사  (0) 2020.10.20
우희종교수  (0) 2020.10.20
김민웅교수  (0) 2020.10.20
황희석변호사  (0) 2020.10.20
And

행동한다는 것. 국내 기후 변화 논의에서 내가 종종 느끼는 부끄러움을 이 젊은이가 잘 언급한다.

국내외의 사회 유명인들이 기후 위기를 말하고 수치를 들어가면서 인류가 얼마나 위기에 있는지 강조하면, 듣는 이들은 감명 받고 정말 좋은 강연이었다며 흩어진다. 그런 강연에 오는 이는 이미 그런 문제 의식이 있는 이들이다.

흔히 보듯이 위기를 강조해 인기나 지지를 얻는 것, 정치나 사회활동에서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대표적 전략 중의 하나다. 선의를 지닌 이들을 감동 내지 선동하기 좋기 때문이다.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그런 짓을 하게 될 것 같아 삼가고 있는입장에서 더 이상 행동이나 활동없이 기후 운운하며 위기 장사하기보다는 이런 젊은이의 살아있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동시에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이유다.

다행히 일부 활동가들이 열심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후변화에 있어서 여전히 악역을 연출하는 나라 아닌가.

© 제공: 한겨레

“지구의 가장 위대한 변호인”

지난해 9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그레타 툰베리를 이렇게 추켜세웠다. 미국을 찾은 툰베리를 만난 직후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말대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이자 대표적 환경운동가로 떠올랐다. 2007년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뒤 잠잠해진 기후위기 담론에 다시 불을 지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18년 학교에 가지 않는 ‘결석 시위’를 시작해 각국으로 확산시킨 그는, 새로운 환경운동을 ‘하드캐리’(실력자가 게임을 승리로 이끈다는 뜻)하고 있다. 수백만명의 팔로어(트위터 420만명, 인스타그램 1050만명)가 있고, 담당 미디어팀이 따로 있는 세계적 ‘셀럽’(유명인)이기도 하다. 지난 16일에는 툰베리의 활동과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아이 엠 그레타]가 개봉돼 국가별로 순차 상영을 시작했다.

© 제공: 한겨레

툰베리는 기후위기 문제는 엄중한 데 비해, 각국 정부와 정치인들의 행보는 더디다는 현실에 주목해왔다. 현재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인 100여년 전보다 1도가량 올랐다. 이대로 인류가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해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이상 오르게 되면 지구 기후는 인류의 노력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변화를 겪게 된다.

지난 16일 화상으로 이루어진 툰베리 인터뷰는 [한겨레]가 올해 4월 기후변화팀 신설 뒤 수차례 요청한 끝에 성사됐다. 이날도 ‘미래를 위한 금요일’ 결석 시위를 마치고 온 그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집에서 7천㎞ 떨어져 있는 서울의 기자들과 눈을 맞췄다.

■ 분노하고 저항하는 미래 세대의 아이콘

―올해 기상이변, 코로나19 등 환경 이슈가 많았다. 당신에게 올해는 어떤 해였나?

 

“모든 사람에게 올해는 위기의 해다. 우리는 인간이 매우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됐다. 우리의 위기 극복 능력을 지금까지 과대평가해왔는데, 우리가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다시 점검할 때다.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아무도 본 적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결석 시위를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 어떤 변화를 느꼈나?

“우리가 이렇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 점이 놀라웠다. 누구도 예상 못 했을 것이다. 매우 놀라웠다. 사람들은 청소년들이 그저 이기적이고 자기만 생각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공동의 문제의식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이제 많은 사람이 청소년들이 결석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우려를 표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점에서 매우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각국 정부는 이런) 상황을 위기로 생각하지 않고 온실가스도 크게 줄고 있지 않다.”

그는 전사다. 기후위기 문제를 가해자(온실가스 과배출 정부, 기업, 이를 방조한 어른 세대)와 피해자(저배출 국가, 미래 세대)로 나누어 누구의 편에 설 것인지 묻는다. 더는 북극곰을 살려달라는 호소에 그치지 않고, 더는 교양 있는 지구인의 선의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에게 “분노조절 문제에나 신경 쓰라”며 조롱하듯 트위트를 남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고 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기싸움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이른바 ‘스트롱맨’들과 맞서는 10대 소녀의 용기는 환경운동을 넘어 어른 세대에 저항하고 분노하는 미래 세대의 아이콘이 됐다.

■ “그린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 말라”

―1년 전 유엔에서 당신을 향해 박수 친 각국 지도자들이 있다. 그들이 당신의 연설 내용을 정책에 반영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현실을 보면 거의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았다. 아직 기후위기를 위기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내 답은 ‘아니다’이다. 지금까지 배출한 온실가스 총량 등 역사적인 책임을 봐야 할 필요도 있다. 어떤 나라들은 다른 나라보다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고,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파리협정에서도 부유한 나라들이 저개발 국가에 삶의 질을 개선할 기회를 제공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 참석할 당시, 청와대는 툰베리의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후 문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가 한국을 찾았을 때, 미국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역대 최연소 ‘올해의 인물’에 툰베리가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고 전했다. 툰베리에게 보인 관심과 달리, 한국은 대외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미온적이며, 심지어 석탄발전에 여전히 투자하고 있는 ‘기후악당’으로 꼽혀왔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을 두고, ‘무늬만 그린’이라는 혹평이 제기되기도 했다.

툰베리는 한국의 이런 상황에 대해 “특정 국가만의 잘못이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가 잘못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린을 구호처럼 앞세우고 있는 정부와 정치인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러 나라에서 많은 이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그린, 그린 딜, 그린 뉴딜, 그린 투자와 같은 말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그린은 단지 색깔에 불과하다. 의미가 없다고 본다. 미사여구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선 ‘환경보다 경제가 우선’이라는 논리가 여전하다.

“현재 시스템에서는 그들의 말이 맞다. 과학이 지적한 대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우리 사회 자체를 완전히 폐쇄할 수는 없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수십년 전부터 준비해야 했다. 더 일찍 시작할수록, 더 쉽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문 대통령이 내가 하는 일을 ‘존중한다’(admires)고 말했다면, 행동으로 증명해주면 좋겠다. 행동이 말보다 훨씬 더 의미가 있다.”

11월3일 치르는 미국 대선은 요즘 그의 최대 관심사다. 툰베리는 지난 10일 자신의 트위터에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자”는 글을 남겼다. 올해 미국 대선은 기후위기 문제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 짐작된다.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이전 오바마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무력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왜 트럼프는 안 되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나는 어떤 경우라도 정치 관련 이야기는 해오지 않았다. 기후위기는 정치를 넘어선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미국 대선은 정치를 넘어선 사안이다”라며 “다음 미국 대통령은 과학을 근거로 기후위기를 (진정한) 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은 매우 부유한 나라이기 때문에 특별한 책임이 있다. 지금까지 배출된 전 세계 온실가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 툰베리와 전세계 청소년들, 우울한 미래에 맞서다

섭식장애가 있어 평소 매우 조금만 먹는 그는 지난해보다 더 야윈 모습이었다. 아스퍼거 증후군(사회관계가 어렵고 특정 상황에만 집중하는 발달장애의 일종)을 겪는 그는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시선을 옆으로 두고 말을 이어갔다. 그에게 기후위기 문제가 매우 극심한 스트레스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한겨레]는 툰베리와 인터뷰하기 전에 한국 청소년들이 그에게 묻고 싶은 질문들을 ‘청소년기후행동’을 통해 모았다. 기후위기 문제를 고민하는 한국 청소년들도 그와 같은 슬픔과 아픔을 경험한다고 했다.

―당신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운동을 함께하는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 모두와 기운을 북돋고 있다. 우리 가족과 강아지, 그리고 이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내가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이다. 앞으로 있을 일을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힘을 다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서, 이 세상이 더 나아지도록 해야 한다.”

―한국 청소년들은 당신이 트럼프나 푸틴과 같은 기후위기 부정론자들과 싸우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고 묻는다.

“흥미로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이제 어느 곳에도 숨을 데가 없다. 그래서 (외려) 청소년들을 공격하고 있다. 그들은 기후위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린다. 기후위기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자신들이) 논리적인 주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제 더는 무시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 보니 청소년들에 대한 공격이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기특하다’ ‘잘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청소년들의 외침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 어른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매우 좌절감을 주는 일이다. 우리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하는 일은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거나 기특하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나, 우리와 셀카를 찍게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다. 이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기후위기 문제를 알아갈수록 장래가 어둡다는 사실에 우울해하는 청소년이 많은 것 같다.

“처음에는 나도 그랬다.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우울했고 슬펐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우울했다. 그러다 가장 좋은 약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바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누가 이 문제에 가장 민감한지, 누가 불편한 질문들을 하는지, 누가 낙관적 생각을 갖고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것도 바꿀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할 말은?

“우리는 함께 (기후위기 문제에) 맞서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결속력을 갖고 함께 행동해야 하고 (그런 노력으로) 필요한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

―지구를 위한 시간이 얼마나 남았다고 생각하나?

“하고 싶은 일을 할 만큼의 시간은 언제나 있다. 기후위기를 막지 못하게 되는 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악화하는 것을 막을 시간은 있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더 나빠지지 않게)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시간 말이다.”

미래 어느 순간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을 돌아볼 때 어떤 감정을 느낄까. 자신의 인생을 걸고 지구를 대변하는 그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하게 될까. 그의 야윈 얼굴과 대비되는 형형한 눈빛이 계속 미안함을 느끼게 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기후위기 문제를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달라”는 당부였다.

(※인터뷰 전문과 동영상은 [한겨레] 누리집(www.hani.co.kr)과 한겨레 티브이,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최우리 김지은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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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고(故) 박원순 시장 비서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2>

- 김민웅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의 진상을 알고자 하는 한 시민)

2020년 10월 19일(월)

1.

귀하에게 보내는 두 번째 공개서한입니다. 긴 편지가 될 것입니다.

지난 10월 15일 공개된 귀하의 입장 전문을 잘 읽었습니다. 고통의 내용과 의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간의 고통으로 인한 실존적 고뇌의 깊이를 짐작으로나마 충분히 공감합니다. 또한 이 사안은 이렇게 명백히 공적 차원의 문제인 것을 귀하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

공적 사안이라는 함은 그 사회 구성원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고 함께 풀어가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는 뜻이겠지요. 따라서 문제를 제기하는 측으로서는 입증의 책임이 있고 그것을 듣고 함께 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하는 측에서는 질문의 권리가 동시에 발생하게 됩니다. 이 점을 먼저 밝히는 까닭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납득이 가지 않거나 더 알고 싶은 대목이 있는데도 피해를 주장하는 이의 발언이라는 것만으로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압박하고, 의문을 제기하면 “2차 가해”라고 규정하는 논법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는 전혀 이성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당하지도 않습니다. 공적사안이 된 문제를 대하는 자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형식과 논법이 어떠하든 일단 가해의 의도가 있을 때에 비로소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질문이 곧 가해라는 발상은 진실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폭력입니다.

저는 귀하에 대한 가해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질문이 생겼을 뿐입니다. 그 질문 속에 만일 가해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여기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3.

스스로도 “진상규명을 요구”하셨으니 진실로 들어서는 문에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은 잘 알고 계시리라 봅니다.

직접 당사자가 아닌 제3자는 진상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이전에는 여러 의문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주장을 진실로 수용하기까지 논리적, 실증적 과정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과정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지점에 대한 질문이 당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질문을 이겨내지 못하는 주장은 힘을 잃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귀하는 자신에게 던져지는 질문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임하고 정리해줄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귀하의 고통을 더는 매우 확실한 방도가 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질문을 피하거나 그에 대한 대답이 분명하지 않다고 여겨지면 귀하의 주장은 신빙성을 상실할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따라서 질문에 답하는 것은 귀하에게도 자신이 겪은 일의 진상을 명백하게 밝히는 것과 함께 명예를 회복하고 추가적 가해를 막는 매우 소중한 기회가 되리라 봅니다.

귀하의 법률 대리인인은 이 점과 관련해서 소임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태도와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자신이 보호해야 할 의뢰인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공적 사안으로 제기해놓고 질문을 봉쇄하는 일에만 급급하고 정작 적극적인 입증과 방어에 소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건 귀하를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더더욱 의혹의 대상으로 만드는 무책임한 자세라고 보여집니다.

이는 귀하가 전혀 원치 않은 바일 텐데 말입니다.

“변호인에 대한 공격은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라고까지 주장하기도 했는데, 변호인의 부실하게 여겨지는 변호를 문제 삼는 것은 피해를 주장하는 이에 대한 공격이 결코 될 수가 없지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더 깊게 거론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4.

귀하는 자신이 이 사건 이후 겪고 있는 고통을 밝히고 호소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표적인 인권운동가가 막강한 권력 뒤에서 위선적이고 이중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든 것에 대한 사회적 반성과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들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그렇게 되어야겠지요.

그런데 그러기 전에 우선 “정말 막강한 권력 뒤에서 위선적이고 이중적으로 행동”했는지의 여부가 입증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이 문장은 박원순 시장을 지칭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고, 귀하가 주장하고 있는 성추행은 문제의 “토양” 이전에 박시장의 개인 책임에 따른 행동과 관련되어 선차적으로 정리되어야 할 대목입니다.

아니면 이 사안을 규명하는 초점은 귀하가 말하고 있는 이른바 “토양”으로 이동하게 되고, 박시장의 성추행 혐의는 기정사실로 확정되어 다음 논의의 전제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전제가 견고해야 그 다음의 논리가 이어집니다. 전제가 무너지면 그 다음 논의는 무의미합니다.

그러니 귀하의 입장에서 “사회적 반성과 제도적 장치”를 위해서라도 그것의 전제가 되는 사건의 진실을 확고히 정리하는 것은 중차대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가상의 허수아비와 싸워야 하는 사회적 에너지 소진의 과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5.

이런 말도 덧붙였더군요.

“아직도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책임과 권한 있는 인사들이 이제라도 자리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의도적 외면”이라고 볼 근거가 제시되어야겠지요? 그런데 그것이 의도적 외면인지 아니면 귀하의 주장을 부정하는 반증인지는 정리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주장과 다른 증언도 나오고 있으니 이를 명확히 정리할 수 있는 귀하의 반증이 필요하게 된 상황입니다. 그렇게 하면 됩니다.

다시 강조하건데 의도적 외면의 태도가 더는 유지될 수 없는 내용을 확인해주면 되는 일이 아닐까요? 귀하의 주장을 반증하는 자료는 도리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한 귀하의 반증은 아직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의도적 외면”이라고 하는 대목은 “근거 없는 비난”으로 들릴 가능성이 생겨납니다. 귀하로서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6.

귀하는 결론 부분에 가서 대단히 큰 맥락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끔찍한 사건이 단순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약자의 인권에 대한 울림이 되어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예방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서로 반대편에 서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공정, 정의, 평화, 인권을 위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는 과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포괄적 논의의 차원에서는 동의하면서도 이 사건이 공정, 정의, 평화, 인권이라는 방향으로 귀하와 함께 갈 수 있는지는 좀 더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이 끔찍한 사건이 단순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라는 대목 때문입니다.

누구도 이 사건을 단순한 사건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끝날 수 있는 사건으로 보고 있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그 “끔찍한” 진상을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랬기에 귀하도 “진상규명”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7.

제가 여성단체에게 보냈던 질문 세 가지를 간략히 상기시켜드리겠습니다.

첫째, “성추행 고충으로 인한 부서이동 요청”에 대한 주장과 제시한 증거물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와 모순이었습니다. 제시한 내용으로만 보자면 부서이동 요청이 성추행 고충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선호부서 이동 요청인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지속적인 음란문자의 실체”에 대한 것입니다. 이 실체 없이 성추행 고충을 이유로 한 부서이동요청은 상사에 대한 근거없는 모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셨을테니 당연히 증거제시가 있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이는 이 모든 사태를 한 순간에 정리할 수 있는 증거라고 봅니다.

셋째, 귀하의 성추행 고충 호소에 대한 “서울시장 비서실의 구조적 묵살과 은폐”에 대한 것입니다. 서울시는 이런 문제와 관련한 공식 매뉴얼이 존재하고 있고 그에 따른 처리방식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법정 대리인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공식 절차와 구조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관련자들은 수사를 받았고 이후 이에 대해 부인하고 있습니다. 주장이 엇갈리면 입증력을 가진 증거로 사태를 판가름해야 합니다. 그저 말로만 하는 것으로 서울시 수장의 성추행 의혹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분명 없을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당연히 거치셨다고 봅니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여성단체는 아직도 함구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8.

지난 번 공개서한에서 귀하에게 보낸 질문 세 가지도 환기시켜 드릴까 합니다.

첫째, “업무 인수관련 문서에 대한 것입니다. 내용은 귀하가 박원순 시장에 대한 자랑과 격찬을 담은 글이었습니다. 공식 문서가 아니라 귀하가 작성한 사적 문건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성추행 피해 당사자가 썼다는 것으로서는 예상하기 어려운 내용이라 혼란이 정리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성추행 가해자에 대해 그렇게 칭찬 일색으로 쓰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그렇다면 이 문건은 무슨 성격인지 잘 판단이 안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둘째, ”시장실 구조“에 대한 증언입니다. 저도 그곳에 여러 번 다녀왔으니 알지만 박원순 시장의 투명 행정 철학으로 시장실 구조는 옆에서, 위에서도 그대로 보입니다. 그런 구조에서 법률 대리인이 주장했던 대로의 은밀한 성추행 행위가 가능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대답이 가능할까요?

셋째, 최근 유튜브 “열린공감TV”에서 공개한 “영상”에 대한 것입니다. 이 영상은 지난 2019년 3월 26일 시장실에서 박원순 시장 생일 파티 장면이 기록된 장면입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 영상이 어떤 장면들을 보여주었는지 당사자로서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영상을 본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4년간 지속적인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 당사자로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인지는 의문으로 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귀하도 이 질문들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언론은 검증되지 않은 영상물로 2차 가해를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9.

자, 그래서 검증의 절차를 거쳐보았으면 합니다. 귀하가 이 영상으로 억울한 피해를 입었다면 당연히 그 피해를 보상받아야 합니다. 그 영상을 올려 공개한 사람은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귀하에게는 그런 문제 제기의 움직임은 없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검증을 누가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영상을 보고 여러 분들과 분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았습니다. 여기에는 여성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매우 원시적 분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바라는 점을 밝혀둡니다. 이와 함께 귀하가 박시장과 재래시장 현장에서 찍은 영상과 사진도 보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인상은 귀하가 박시장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친밀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을 아직 공개하기 전이었고, 따라서 박시장과의 관계에서 상대를 민망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역설적인 노력의 반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또는 귀하의 유쾌한 성격과 비서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결과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10.

그러나 누가 보아도 그 친밀감 표현은 신체 접촉 수준으로 보자면 이게 무얼까? 라는 질문을 피하기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곤혹스러워졌습니다. 제 나이나 위치나 살아온 입장에서 상세하게 말하기 무척 어려운 내용입니다. 이 정도로 그칠 수 밖에 없는 것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당연하게도 “4년 동안 지속적으로 끔찍하게 당한 성추행” 피해자가 자신을 성적으로 가해하는 상대에게 그것도 모두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 신체적으로 밀착과의 경계선이 불명확할 정도로 접촉할 수 있는 상황이란 과연 어떤 경우일까? 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입니다.

귀하의 성추행 피해 주장 앞에 선 우리로서는 풀기 어려운 퍼즐이 등장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 논의는 자칫 “피해자다움의 강요”라는 틀 속에 처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이는 성추행 피해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는 질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질문을 접고 보아도 여전히 의문이 생겨납니다. 뭐지?

설명이 가능할까요? 귀하를 위해서도 이런 의문은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11.

지난 10월 16일 박원순 시장 100일 재를 지냈습니다. 추모행사도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맞추어 귀하를 지지 연대하는 여성단체들이 서울 도서관 앞에서 공개 행사를 가졌더군요. 박시장에 대한 애도를 가해로 규정했던 것을 떠올리는 장면이었고, 화장터에 간 시각에 기자회견을 했던 모습과도 겹쳤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낭독된 글은 “위선적인 인권운동가”라고 언론에 큼지막하게 박힌 글자로 압축되었습니다.

귀하가 한때 그토록 평소에 자랑스러워하고 내세웠던 한 인물의 평생이 그렇게 조락(凋落)의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로 기억하는 이들이 주축이 되어 박원순 시장의 헌신적인 삶을 기리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원순씨”를 그리워한 이들이 모였던 것입니다.

12.

우리는 같은 인물에 대해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 기억의 격차를 푸는 일은 진상을 밝히는 작업을 요구합니다. 진상규명은 다른 이의 손을 빌거나 사법기관의 손을 빌 까닭이 없는 일입니다. 귀하가 말했듯이 진상규명의 법률적 절차가 사라진 현실에서 귀하의 입증만이 유일한 방법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난 4년 동안의 지속적인 성추행 피해 사실 증거제시로 즉각 가능합니다. 경찰에 넘겼다는 말로는 멀리 돌아갈 일이 아닙니다. 이미 공개기자회견으로 귀하는 박원순 시장에 대한 사회적고발을 했으니 그에 따른 입증책임을 진다는 뜻이고 그걸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이것은 명백한 무고가 될 수 있습니다.

부디 우리의 혼란을 해결하는 일에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귀하가 말한 대로의 공정하고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함께 만들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첫 번째 공개서한의 말미를 다시 인용합니다.

“질문하는 것은 가해행위가 아니라 사건의 실체를 이해하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입니다. 이 노력 또한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존중으로 귀하는 더더욱 존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박원순 시장의 영전 앞에서 귀하에게 정중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귀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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