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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일석기자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이 흐릅니다. 서정적인 선율이 가을의 느낌에 걸맞습니다. 한 주간 부산과 대전을 거치며 호텔방에서 노트북 스피커로 듣는 것보다 20년도 더 된 정든 스피커로 듣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창 밖은 햇살이 내리쬐고 어느 골목길에 앉아 책을 읽다가 꾸벅꾸벅 졸아도 좋을듯 한 다사로운 느낌입니다. 어제 잠시 들린 캠퍼스엔 단풍이 물들고 있어 계절을 웅변하는 듯 했습니다. 뒷산 나무들은 아직 연녹이 짙은 사이사이로 살짝 황금빛이 비칩니다.

창을 열면 세상사는 소리가 들립니다. 주말 오전에도 분주하게 일하는 사람들, 어딘가를 향하는 사람들, 엔진을 부르릉 거리며 무언가를 좇는 일상이 들립니다. 그 곁에, 바람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나뭇잎이 흔들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가을엔 모든 것이 죽어갑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봄에 피어오르던 풀잎들은 떨어진 기온처럼 숨을 죽이고 나무들은 풍성하던 옷을 벗기 시작하고 밤과 감과 대추는 완연히 익어 새로운 생명을 찾아 떨어집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윤동주의 시가 떠오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죽어가는 중입니다. 그 죽어가는 사람들을 사랑하겠다는 의지가 우리 삶의 동력일 지도 모릅니다.

오늘 따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지구를 넘어 공간을 생각하게 합니다. 파란 지구와 달리, 하늘 위로 끝없이 솟구치면 빛이 파랗게 산란하지 않는 검은 하늘을 맞게 될 터이고 더 멀리 솟구치면 파란 구슬 같은 지구를 내려다 보게 될 겁니다. 그 공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에겐 여기 지구가 세상의 전부입니다. 아웅다웅 삶의 집착은 여기가 전부라는 유한성에 대한 강박의 표현일 것입니다. 죽어가는 생명, 좁다른 지구... 사랑하기 보단 누리고 싶은 마음이 더 강렬한 건 바로 그 이유일 것입니다.

죽지 않는 것은 생명이 아닙니다. 지지 않는 것은 꽃이 아닙니다. 돌과 바위처럼 그리고 조화처럼 변하지 않는 것들 죽음을 맞지 않는 것들은 죽어가는 것들 보다 더 귀할 수 없습니다.

가을은 열매를 맺는 계절이고 겨울의 죽음을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땀을 흘리는 여름을 보냈든 아니든, 가을은 누구에게나 돌아옵니다. 생존의 몸부림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값진 열매는 맺을 수 없습니다. 화려한 꽃을 피우기에만 집중한다면 그 거들먹거림 너머로 새생명을 잉태하는 열매는 초라할 것입니다.

부산이나 대구, 뉴욕이나 파리, 밀라노와 산티아고, 동경과 베이징, 그 어디나 삶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문화적 다양성이 아무리 커도 인생의 계절은 누구에게나 돌아옵니다.

부를 얻고 권력을 좇고 명예를 추구하는 일. 이 세가지 밖에 없다면 역사는 그렇고 그런 일로 지루할 것입니다. 정치경제사회의 흐름이 아무리 드라마틱하다고 해도 부처님 손바닥 안입니다. 전쟁과 평화가 교차되는 역사의 방향이 유한성에 대한 강박에 의해 이끌려 간다면 그건 그 디테일의 그로테스크함에도 불구하도 여전히 지루한 반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윤동주는 무얼 사랑하겠다고 한 것일까요? 한 점의 바람, 살랑거리는 가지, 파란 하늘, 종알거리는 새소리, 노인네의 걸음걸이, 아낙네가 널고 있는 빨래, 그리고 차이코프스키나 바하... 시가 쉽게 쓰여지는 게 부끄러운 일이듯, 글이 쉽게 쓰여지는 건 부끄럽습니다. 화려한 꽃을 피워 세간의 주목을 받아도, 곧 지고 말아버릴 그 화려함은 다가올 죽음을 잊으려는 자위일 뿐입니다.

80이 넘으신 아버님이 생신을 맞습니다. 영상으로 아들의 얼굴을 볼 때마마다 흐뭇하게 미소가 피어나는 부모님의 표정을 보는 일은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일으킵니다. 뭐가 그리 좋다고...

나를 넘어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에겐 얼마나 고된 일입니까. 눈빛을 주고 받고 표정을 나누는 사람들, 삶의 자리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을 하나의 인격으로, 시간의 함수로 자라왔고 변해왔고 그리고 앞으로도 새로와질 한 인간으로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인생의 가을인가 봅니다. 일과 목표 대신에 자꾸 사람들이 눈에 밟히는 건... 산책을 나오라고 손짓이라도 하듯 나뭇가지들이 한가롭게 흔들립니다. 가을을 누리려 느릿한 산보를 가다 바람이 이는 어느 자리에 멈추어 서서, 눈을 감고 세상 소리를 듣다가 피부에 닿는 햇살이 따가와지면 이 무한한 계절의 흐름에 잠시 한 점을 찍고 간다고 속삭여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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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 시절에는 각부 장관이나 주요 기관장을 임명하는 패턴이 있었습니다. 대법원장, 국무총리, 문교부 장관 등은 그리 중요한 자리로 취급하지 않아서, ‘지역 안배용’으로 썼습니다. 이런 자리에는 월남민이나 충청도 출신이 많이 기용됐습니다.

독재정권이 핵심 요직으로 취급한 자리는 중앙정보부장(안기부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내무부 장관, 치안본부장 등이었습니다. 이들 자리에는 반드시 지연이나 학연 등으로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임명했습니다. 그래야 공식 지휘 체계를 건너뛰고 사적으로 비밀리에 대통령이 직접 지시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 때문에 표적 수사, 표적 세무조사 등으로 정권에 비협조적이거나 위협적인 사람과 기업들을 괴롭히는 게 일상화했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 국세청을 통해 노무현 정권 관련자들을 괴롭히고, 국정원을 통해 시민단체들을 괴롭힌 건 이런 ‘전통’이 소생한 결과였습니다.

최근 언론에 ‘문재인 정권의 권력 남용’이라는 취지의 기사가 자주 실립니다. 야당 의원들이 ‘좌파 독재’라는 말을 쓴지도 오래됐습니다. 맘에 안 드는 기관장의 사생활을 뒷조사해서 망신 주고 쫓아내는 게 ‘권력 남용’이고, 검찰총장이 민주정부가 간섭하지 않는 상황을 이용해 함부로 표적수사를 자행하는 게 '권력 남용'이며,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무시하고 정부의 개혁 방안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게 ‘권력 남용’입니다. 대통령이 공식 지휘체계를 통해 공개적으로 각 기관 책임자를 지휘하는 건 ‘권력 남용’이 아니라 정당하고 민주적인 국정 운영입니다.

‘권력 남용’이 뭔지도 모르는 자들이 언론인이나 지식인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함부로 떠드는 거야말로, ‘권력 남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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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재수 감찰 건 관련 재판에서 박형철의 증언에 대해 이게 뭔 말이냐고 물어보시는 분이 몇 분 계셨습니다. 기사만 보면 조 전 장관에게 뭔가 엄청나게 불리한 증언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이 사건의 핵심은 감찰의 지속, 종결, 처리 방안에 대한 모든 결정이 민정수석의 재량과 권한이라는 것입니다. 박형철이 뭔 말을 하든 "결정권은 민정수석에게 있었다"는 말 한 마디로 다 끝납니다. 오늘 박형철 증언의 제목을 뽑는다면 바로 <박형철 "결정권은 민정수석에게 있었다">로 뽑았어야 합니다.

셋이 모여서 결정을 했는지, 민정수석과 민정비서관이 결정을 해서 자기한테 통보를 했든지, 국회에서 조 전 장관이 "비위사실이 약하다"고 말한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이는 사실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니라 평가의 문제이지만 표현상 사실이라고 하구요), 박형철 의견 상 처리 방안이 어떻게 됐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등은 하나도 안 중요합니다.

그런데 검찰은 이런 사실관계의 차이가 뭐라도 되는 양 그런 것들을 잔뜩 물어보고, 기자들은 거기에 장단을 맞춰 그게 뭐라도 되는 양 나발을 불고 있는 것입니다. 검언 합작 언론플레이입니다. 기자들은 잘 모르는 채 그냥 장단만 맞춰주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검사들은 뻔히 알고 있습니다.

기존 직권남용에 직무유기 혐의를 추가하여 공소장을 변경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무유기가 적용되려면 예를 들어 유재수의 경우 어떤 근거에 의하여 감찰을 지속했어야 했다거나, 혹은 처리에 있어서 검찰 이첩을 해야하는 건데 민정수석이 임의로 감찰을 종결하고 기관 통보로 처리했을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그 '어떤 근거'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마저 민정수석의 재량입니다. 현재 검찰이 내세우는 '근거'라는 것은 박형철, 이인걸을 포함한 검찰출신 비서관과 특감반원의 의견이 감찰을 더 했어야 했고, 처리도 검찰 통보로 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그들의 생각일 뿐 민정수석의 결정이 그들의 의견에 구속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예를 들어 검찰 수사관이 어떤 혐의자를 반드시 기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검사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고 해서 검사를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로 처벌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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