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시와 수필이 있는 마음에 쉼터 입니다
by 모르세

NOTICE

CALENDAR

«   2020/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 CLOUD

  • Total :
  • Today :  | Yesterday :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3692)
(855)
수필 (8)
서정시 (1)
트위터 (1991)
공지사항 (3)
페이스북 (817)
역사 (4)
유투브 (1)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ARCHIVE



  1. 2020.12.25
    Uijin Hwang
  2. 2020.12.25
    우희종교수
  3. 2020.12.25
    살구나무

공정함을 잃은 대한민국 사법부를 위해 오늘은 그림 하나 긴급히 보고 가실께요!

오늘의 그림은 제라르 다비드의 [캄비세스 재판] (The judgment of cambyses), 1498년작으로 현재는 벨기에 브뤼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벨기에 브뤼헤 시의회의 첫 공식 주문작으로, 원래 브뤼헤 시청 시의회 상원 집무실에 걸렸던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정의’라는 추상적 주제와 가혹한 법 집행을 구체적인 신학적 비전으로 고양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보통 유럽에서는 시청 시의회실은 법적 송사가 집행되는 법정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법정을 장식하기 위해 중세에 선호되던 주제는 시 의회 업무와 관련이 있으면서도 시민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모범적 예화를 담은 장면들이었습니다.

제라르 다비드의 [캄비세스 재판]은 그림 양쪽이 책 처럼 열리는 패널 형식이며 네 부분의 일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왼편 ‘체포’ 패널의 후경에는 부패한 판관 시삼네스가 뇌물을 받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전경은 캄비세스 왕의 명령으로 시삼네스가 체포되는 순간이 담겨있습니다. 오른편 ‘처형’ 패널의 전경에는 체포된 시삼네스의 가죽을 칼로 벗기는 처형 장면이 눈에 띄게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후경에는 브뤼헤 시청사 ‘정의의 회랑’(로지아, loggia)에 아버지 시삼네스의 피부가죽을 덮은 의자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 의자에는 시삼네스의 아들 오타네스(Otanes) 가 새 법관으로 앉아있습니다.

이 그림의 바탕이 된 문헌적 전거는 헤로도투스의 [역사]와 동방 기원의 전설과 후대의 모범이 될만한 정치적 교훈적 일화들을 모은 [제스타 로마노룸]입니다.

[제스타 로마노룸]은 16쇄를 거듭한 책으로서, 그 유명한 [플루타르크 영웅전]처럼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마크로비우스, 아울루스 겔리우스, 플리니우스, 세네카, 보에티우스, 오비디우스 등의 글에서 도덕적 판단에 교훈을 주며, 모범이 될 수 있는 예화를 고루 엮은 책입니다.

이 책의 29번째 일화로, 뇌물 수수와 부패한 재판에 대한 훈계로서, 뇌물 받은 재판장의 껍질을 벗기는 잔혹한 형벌의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정의’는 중세의 아홉개 미덕 중의 하나이었습니다.

고대 이래 ‘정의’ (Justice)의 재현에는 정의를 의인화한 유스티치아(Justitiae)가 대표적 표상으로 사용되었고, 유럽의 수많은 시청사 앞에 조각되었습니다.

‘정의’는 저울과 검을 들고 공정을 기하기 위해 보통 눈을 띠로 묶은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정의를 판단하는데 있어 눈이 먼 모습은 의외이지만, 이는 당장 눈에 보이는 표피적 현상으로 사물을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울은 균형을 잡는 척도로서 공정함을 나타내고, 검은 날카로운 판단력을 나타냅니다.

제라르 다비드의 [캄비세스 재판]은 당시 사람들이 ‘정의’에 대해 생각했던 관념인 분배적 정의 혹은 보복적 정의 중 구약성서적인 의미에서의 보복적 정의를 다루고 있습니다.

‘보복적 정의’라 함은 보통 재판의 결과인 처형과 직결됩니다: [캄비세스 재판]에서 칼로 껍질을 벗기는 장면 즉, 처형받는 시삼네스의 고통과 얼굴의 찡그림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마치 공공장소에서 해부당하는 사람을 구경하듯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바로 정의를 잃은 사람들의 분노를 너무나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의: Justice’ (‘심판’, ‘재판’이라는 뜻도 있다) 장면들이 유럽에서 시청 장식의 관례적 주제로 되풀이된 까닭은 사법 및 행정을 담당하는 관료들이 모범적 예화로 형상화된 작품을 보며 어떤 상황에서도 공정함을 잊지 않도록 고전의 교훈을 항시 되새겨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세계 문명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의롭지 못하고 부정한 판결을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마구남발하신 대한민국 사법부에 속한 그 판사님들, 제발 정신 좀 차리시라고 이 그림을 날려드립니다!!!

출처: https://m.blog.naver.com/lljy3414/70107564725

'페이스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요훈기자  (0) 2020.12.25
최동석교수  (0) 2020.12.25
우희종교수  (0) 2020.12.25
살구나무  (0) 2020.12.25
華輪  (0) 2020.12.25
And

대통령은 충분히 절차적 민주주의를 보여주었다. 절차란 그것이 담고 있는 취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절차를 통해 그 뜻을 살리기 보다는 오히려 절차를 빙자해 그 뜻을 훼손하는 영악한 자들은 역사상 늘 있어 왔다.

그런 자들에겐 절차에 집착하기 보다는 그 뜻을 살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는 대통령은 물론, 다수 여당의 현 지도부가 지금 상황에 대하여 어느 정도까지 결연한 자세인가이며, 이들의 자세가 향후 상황 전개에 매우 중요하게 작동할 것이다.

결연한 다수 여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지금처럼 적폐에 밀려 검-판에 휘둘리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급실망한 시민들이 전면에 나설 의욕이 생길지 의문이다. 이대로라면 향후 재보선이나 대선에서 전혀 기대할 것도 없다.

 

적폐 첨병으로서의 검찰 집단의 조직적 저항은 개혁 행위에 칼을 들이댄다. 반 혁명은 저들 집단의 큰 그림 속에 차분히 진행되고 있다.

해방 후 반민특위가 해체되던 때보다 상황은 더욱 안좋다. 당시 친일 적폐는 이승만 대통령의 힘을 빌었건만, 이제 100년의 내공을 지닌 적폐는 개혁 의지의 대통령에게마저 태연하게 들이댄다.

이번 조선기사를 보면 내용도 그렇지만 이 역시 검찰이 늘 하던 방식이다. 언론에 특정 정보를 흘려서 여론몰이 하는 전형적인 검-언 유착.

이 방식으로 방해되는 많은 이들을 사지로 몰았고 무소불위의 특권을 쌓아 왔다. 이대로라면 누구라고 거명할 것 없이 앞으로 개혁 의지를 지녔던 많은 이들의 희생이 예상된다. 적폐 역혁명의 최고점이 진행 중이다.

역사의 추는 촛불과 100년 적폐,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누가 해 주지 않는다. 선출직이 아닌 검찰은 촛불을 그리 신경쓰지 않을지라도 추를 움직이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이고, 우리가 결정한다

 

'페이스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동석교수  (0) 2020.12.25
Uijin Hwang  (0) 2020.12.25
살구나무  (0) 2020.12.25
華輪  (0) 2020.12.25
김상수  (0) 2020.12.25
And

정경심 교수 유죄선고와 구속, 윤석열 징계안 가처분 신청 인용, 나경원 고발 사건 13개 모두 불기소 처리.

이게 끝이 아니다. 김명수 사법부와 윤석열 검찰이 국민과 정부를 우롱할 일은 아직 남아있다.

윤석열 장모 최은순의 347억 은행 잔고 증명서 위조는 재판부가 무죄 선고할 것이고, 최은순의 남아있는 의혹들은 무혐의 처리될 것이다.

또한 윤석열 처 김건희의 코바나컨턴츠 협찬 뇌물 혐의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은 검찰에서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시킬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관련 자료가 일부 삭제됐다는 이유로 구속기소된 2명과 불구속기소된 1명의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에게는 유죄가 선고될 것이며, 검찰의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는 청와대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조국 장관의 재판도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윤석열은 남은 임기동안 1차적으로 자신과 가족의 안위가 보장됐고,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았으므로 검찰수사에 성역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정부와 여당인사들만을 대상으로 한 선택적인 강압 수사와 기소를 예상할 수 있다. 벌써 대통령 친인척과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내사를 시작했을 것이다.

우리 역사상 검찰총장이 이렇게 대놓고 정부를 공격하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지만, 사법부가 이렇게 대놓고 검찰편을 들어주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사법부의 정권 흔들기 기저에는 검찰개혁 다음은 사법개혁이라는 위기 의식과 공수처 설치에 대한 부정적인 반감이 내재되어 있다.

법원 판사들의 일련의 판결은 검찰에 약점을 잡혀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검찰을 위해 복무하는 것만이 자신들의 살 길이라는 인식이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사법부는 개혁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장해주고, 공수처 수사 대상에서 판사들을 제외시켰다면 이렇게 까지 말도 안되는 판결들을 했을까?

현재의 사법부는 윤석열처럼 이제는 우리도 우리의 힘을 보여줄때라며 김명수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것 같다.

판사들이 사법부 집단의 이익이 걸린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면 한쪽으로 치우친 편향적인 판결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법부에게 중립과 양심에 따른 판결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윤석열은 검찰개혁을 막으려다 검찰개혁의 명분과 동력이 되었다. 이제는 사법부가 사법개혁을 막으려고 윤석열을 도움으로써 사법개혁의 명분과 동력을 주고 있다.

사법부가 판사들 각자의 양심에 따라 제대로 된 판결들을 내렸다면 사법개혁의 필요성은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권력형 게이트에서도 볼 수 없는 일개 한 가족에 대해 200번 넘는 압수수색 영장 발부, 말도 안되는 구속기소 허가, 이상하고 기묘한 재판부의 선고 이유, 공정하지 못한 재판 결과, 일회성이 아닌 계속되는 편파적인 판결...

이는 사법개혁이 왜 필요한지 판사들 자신들이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개차반 사법부를 가만히 둔다면 입법부는 바보나 다름없다. 3권분립의 헌법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여론 의식하지 말고 조금은 두렵더라도 입법부가 나서 법 개정이든 탄핵이든 행동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안그럼 사법부와 검찰의 독재 시대가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사법부가 봐준 사람들은 악하고, 사법부가 안봐주는 사람들이 선한 사회가 되고 있다. 사법부가 썩어가고 있다. 제동을 걸지 못하면 법치가 무너진다.

너무 참담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고 가고 싶다.

'페이스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Uijin Hwang  (0) 2020.12.25
우희종교수  (0) 2020.12.25
華輪  (0) 2020.12.25
김상수  (0) 2020.12.25
고일석기자  (0) 2020.12.25
And